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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의 건국 — 초한전쟁과 유방의 승리

기원전 206년, 진(秦)의 시황제가 죽은 지 불과 4년 만에 제국은 무너졌다.

그 폐허 위에서 두 영웅이 천하를 다퉜다. 한쪽은 귀족 출신의 전략가이자 전장에서 무적이었던 항우(項羽). 다른 한쪽은 농민 출신의 건달, 유방(劉邦).

결과는 우리가 안다. 유방이 이겼다.

왜 항우는 졌는가

항우의 실패는 군사적 패배가 아니었다. 그는 전투에서 거의 지지 않았다. 그의 실패는 정치적이었다.

첫째, 그는 인재를 쓸 줄 몰랐다. 범증(范增)이라는 걸출한 모사가 있었으나, 유방의 이간계에 넘어가 그를 내쳤다. 항우는 혼자 잘난 사람이었다. 혼자 잘난 사람은 집단지성을 만들지 못한다.

둘째, 그는 잔인했다. 함양을 불태우고, 항복한 진나라 병사 20만을 생매장했다. 공포는 단기적으로 효과가 있지만, 장기적으로 저항을 낳는다.

셋째, 그는 고집스러웠다. 홍문연에서 유방을 죽일 기회가 있었으나 범증의 신호를 무시했다. “대장부답지 못하다”는 말 한마디에 기회를 날렸다.

유방의 역설

유방은 글도 제대로 못 읽는 사람이었다. 부하들 앞에서 욕을 달고 살았고, 학자를 만나면 그 갓을 빼앗아 오줌을 쌌다는 기록도 있다.

그런데 그는 천하를 얻었다.

그 비결은 역설적으로 자신의 한계를 알았다는 것이다. 그는 한신(韓信)에게 병권을 줬고, 장량(張良)의 계책을 들었으며, 소하(蕭何)가 후방을 담당하게 했다. 유방이 한 일은 이 세 사람을 쓴 것이다.

한고조는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장량만큼 계략을 세우지 못하고, 소하만큼 나라를 다스리지 못하며, 한신만큼 전쟁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이 세 사람을 썼다. 항우는 범증 하나도 쓰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이겼다.”

역사가 주는 교훈

리더십은 개인의 탁월함이 아니다. 탁월한 사람들을 모아 그들이 빛날 수 있게 하는 능력이다.

항우는 영웅이었다. 유방은 리더였다. 그리고 역사는 리더의 편이었다.